고전적(전통적) 현실주의(Classical Realism)는 20세기 초반 국제 정세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등장한 이론이다.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 대공황, 일본의 만주사변(1931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1935년), 독일의 재무장과 같은 사건들은 국제 체제에서 권력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고, 이상주의적 접근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통적 현실주의는 국가가 자국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권력을 중심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1. 등장 배경
고전적 현실주의는 1930년대의 국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자리 잡았다. 세계 대공황은 주요 국가들 간의 경쟁과 불안을 고조시켰고, 일본, 이탈리아, 독일 등의 국가들이 침략적 외교 정책을 펼치며 국제 연맹을 탈퇴했다. 이러한 배경은 국제 정치를 이상주의적 가치가 아닌 현실적 권력 투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게 만들었다.
2. 이론적 기원
이론적 기원은 고대와 근대의 정치 철학자들, 특히 투키디데스(Thucydides),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이 사상가들은 현대 국제정치학에서 전통적 현실주의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① 투키디데스 (Thucydides)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이자 정치 철학자로, 그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과 권력 정치의 본질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권력을 추구하고, 국가 간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보았다. 투키디데스의 유명한 멜로스의 대화(the Melian Dialogue)는 약소국이라면 강대국을 따라야 한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권력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국제 관계에서 도덕적 이상보다는 현실적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국제 정치에서 권력과 이익이 핵심 동인임을 제시했다. 이러한 투키디데스의 생각은 전통적 현실주의에서 국가 간의 권력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관점으로 이어졌다.
②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 철학자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The Prince)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도덕적 규범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 본성을 이기적이고 불안정한 것으로 보았으며, 지도자는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국제 정치에서 국가가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생존과 이익을 위해 현실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전통적 현실주의의 핵심 아이디어에 큰 영향을 미쳤다.
③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서로를 불신하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 본성이 두려움과 공격성에 의해 주도된다고 보았고, 이러한 본성을 제어하기 위해 강력한 정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홉스의 사상에서 무정부 상태는 인간을 무제한의 경쟁 상태로 몰아넣으며, 이는 국가 간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국제 정치에서 상위 권위가 부재한 무정부 상태에서 각국은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하며 권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은 현실주의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3. 주요 가정
전통적 현실주의는 몇 가지 중요한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 국가 중심성: 국제 정치는 국가가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국제 문제에서 국가의 이익이 가장 우선시된다.
- 동질성: 모든 국가는 기본적으로 생존을 목표로 하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결정을 내린다.
- 합리성: 국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외교나 군사 전략을 통해 자국의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 무정부 상태: 국제 체제는 상위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 상태이며, 각 국가는 자국의 생존을 스스로 보장해야 한다. 이로 인해 국가 간 권력 투쟁이 불가피하다.
4. 주요 이론가
전통적 현실주의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중에서도 프레데릭 슈만(F. Schuman), 에드워드 할렛 카(E. H. Carr), 라인홀드 니버(R. Niebuhr), 그리고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가 대표적이다.
- 프레데릭 슈만: 국제 정치는 본질적으로 권력 투쟁의 장이라고 보며,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그 구체적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 에드워드 할렛 카: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절충을 강조하며, 국제정치에서 도덕적 가치와 권력을 조화롭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라인홀드 니버: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불안정한 본성으로 인해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갖게 된다고 본다. 국제 정치는 필연적으로 권력 투쟁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 와 현실주의 6원칙
한스 모겐소는 현실주의의 대표적 이론가로, 그의 이론은 권력과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한다.
그는 국제 정치가 권력 투쟁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고, 현실주의를 설명하는 여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 정치는 불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법칙에 따라 정치가 이루어진다.
- 국가이익은 권력으로 정의된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한다.
- 국가이익과 권력은 가변적이다: 상황에 따라 국가이익과 권력의 형태는 변화할 수 있다.
- 정치와 도덕 사이의 긴장: 도덕적 요구와 정치적 성공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 국가의 도덕적 열망과 보편적 도덕법칙은 일치하지 않는다: 한 국가의 도덕적 목표를 전 세계적인 도덕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 정치의 자율성: 정치 영역은 다른 영역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자체적인 법칙을 따른다.
6. 권력 투쟁과 국가이익
한스 모겐소는 권력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를 이해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권력을 추구하며,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본질적으로 무제한적이다. 즉, 인간은 자신이 지배할 수 있는 한계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권력을 얻으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욕구는 국가의 행동으로 전이되며, 국제 체제에서 권력 투쟁은 필연적이다.
국가들은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권력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권력은 단순히 군사력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력, 외교적 영향력, 문화적 힘 등 다양한 형태를 포함한다. 국가 간의 협상이나 갈등은 각국이 동원할 수 있는 권력 자원의 양과 그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겐소는 권력의 대체성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이는 국가가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군사적 패배를 입은 국가라도 외교적 능력이나 경제력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권력 요소들이 국가 간의 관계를 형성하며, 국가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된다.
7. 세력균형과 외교 정책
모겐소의 현실주의에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은 국제 체제에서 국가 간 권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원리로 간주된다. 세력균형은 한 국가 또는 국가 그룹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방지하고, 그로 인해 국제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강력한 국가가 등장하면 다른 국가들이 그에 대응하여 자신의 권력을 증대시키거나 동맹을 맺어 그 국가의 팽창을 저지하는 방식으로 세력균형이 작동한다.
그러나 모겐소는 세력균형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첫째, 세력균형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각국의 의도나 실제 힘의 분포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세력균형의 유지가 항상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세력균형은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권력의 분포가 명확하지 않거나 세력균형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 셋째, 세력균형은 모든 상황에서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일부 국가는 다른 방식으로도 자국의 안보를 확보할 수 있고, 세력균형 전략이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위험할 수 있는 상황도 존재한다.
모겐소는 외교 정책을 세 가지 주요 범주로 구분했다:
- 현상유지 정책: 권력의 유지가 목표인 정책으로, 현존하는 권력 구조를 안정시키고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현재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고 국제 체제 내에서 국가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포함한다.
- 제국주의 정책: 권력의 증가를 목표로 하는 정책으로, 한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려고 할 때 사용된다. 이는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방법을 통해 다른 국가를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나타날 수 있다.
- 위신 정책: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외부에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정책이다. 위신 정책은 국가의 신뢰성과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종종 상징적이거나 선언적인 행동을 통해 권력을 표현한다. 위신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다른 국가들이 자국을 존중하거나 두려워하도록 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외교 정책들은 모두 국가의 권력을 강화하거나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국제 정치의 본질인 권력 투쟁에서 국가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8. 현실주의에 입각해서 21세기의 국제 정세를 이해해보기
현실주의는 국가의 권력과 이익을 중심으로 국제 정치가 전개된다고 보는 이론이기 때문에, 21세기에도 여전히 국가 간의 권력 경쟁과 이해관계가 국제 관계의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하는 사례들이 많다.
1) 미·중 경쟁
21세기 들어 가장 두드러진 국제정치적 현상 중 하나는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이다. 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두 국가가 각자의 권력을 증대시키고 국제 체제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기존의 패권국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고, 중국은 경제적·군사적 성장을 바탕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제국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특히 남중국해 문제나 대만 문제에서 중국의 군사적 및 외교적 움직임은 권력 확대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기지 건설, 대만과의 통일 의지 표명 등은 모두 중국이 지역적, 글로벌 차원에서의 권력을 증대시키려는 시도이다. 미국은 이러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 하며, 이는 현실주의가 설명하는 전형적인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국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증대시키는 등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한 대응을 하고 있다.
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에 발생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강대국이 자국의 권력과 이익을 확대하려는 전형적인 사례로 이해될 수 있다. 러시아는 냉전 이후 자국의 세력이 약화되고, 서구의 영향력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해왔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서구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군사적 행동은 현실주의의 제국주의적 외교 정책(권력의 확대)으로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는 자국의 안전보장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전략적 완충지대로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나토(NATO)의 동진을 막기 위해 힘을 사용했다. 이 사건은 무정부 상태에서 각국이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군사적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적 가정을 잘 보여준다.
3) 북한의 핵 개발
북한의 핵 개발은 현실주의의 국가 생존과 권력의 추구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북한은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상태에서 체제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며, 그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 현실주의 관점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통해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고, 국제사회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핵 개발은 북한이 군사력을 통해 자신의 안보를 확보하려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국제 협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위신 정책(prestige policy)의 일환이다. 국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외교적 협상에서 더 강력한 발언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4) 유럽 연합의 분열과 자국 우선주의
21세기 들어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난 자국 우선주의와 유럽연합(EU)의 분열은 현실주의적으로 국가들이 국제 기구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브렉시트(Brexit)로 대표되는 영국의 EU 탈퇴는 국가가 자국의 주권을 회복하고, 자신의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유럽 내에서 일부 국가들이 난민 문제, 경제적 불균형, 안보 문제 등을 이유로 자국 이익을 강화하는 정책을 택하는 것은 현실주의에서 강조하는 국가 중심성의 또 다른 사례이다. 국제 기구나 협력 체제를 통해 권력을 나누기보다는, 각국이 자국의 주권을 강화하고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5) 기후 변화 대응에서의 국가적 이익 추구
기후 변화 문제는 글로벌 차원에서 협력이 요구되는 과제지만, 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각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생존을 위해 기후 정책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선진국들은 탄소 배출 감축을 요구하는 반면,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이러한 상황은 현실주의적 이익 추구의 또 다른 예시로 볼 수 있다. 각국은 기후 문제에 대해 전 세계적인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자국의 산업 보호와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는 입장을 보인다. 즉, 기후 변화 대응도 결국 국가가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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