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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이론 정리 - 2. 신현실주의 Neorealism

갓생원 2024. 9. 15. 10:00

신현실주의(Neorealism)는 1980년대에 등장한 국제정치이론으로, 기존 현실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국제정치 체제 자체를 분석의 중심에 두는 이론이다. 주로 케네스 왈츠(Kenneth Waltz)에 의해 발전된 이 이론은 국제정치 현상을 국가 내부의 특성보다는 국제체제의 구조적 요인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1. 신현실주의의 등장 배경

신현실주의는 1980년대 냉전의 재개와 더불어 국제정치 상황의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등장했다. 1979년 이란의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국제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국과 소련 간의 군비 경쟁이 이어지는 ‘신냉전’ 시대였다. 기존 현실주의는 국제적 현상을 국가 단위에서 설명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복잡한 국제정치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신현실주의는 체제적 분석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케네스 왈츠 (Kenneth Waltz)

2. 케네스 왈츠 (Kenneth Waltz) 의 신현실주의 

케네스 왈츠(월츠)는 기존의 현실주의와 달리, 국제체제를 설명하는 데 있어 국가 간 상호작용보다는 국제체제 자체의 구조를 강조했다. 그는 국제정치 현상을 설명할 때 국가의 내적인 특성이나 행동보다는 국제체제의 구조적 특성을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환원주의(reductionism) 비판

기존의 이론들은 국가의 행동을 설명할 때 국가 내부의 특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접근을 '환원주의'라고 비판하며, 왈츠는 국제정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국제체제의 수준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2) 국제체제의 무정부 상태

신현실주의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국제체제가 '무정부 상태'라는 점이다. 무정부 상태란 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상위의 권위나 지배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국가들은 자국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스스로 힘을 키우고,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3. 국제체제 구조의 세 가지 요소

왈츠는 국제체제를 분석하는 세 가지 주요 요소를 제시했다.

  • 조직원리: 국제체제는 무정부 상태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국가가 자국의 생존을 스스로 보장해야 한다는 원리를 내포한다.
  • 기능의 미분화: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며, 국가 간 기능의 차이는 미미하다. 모든 국가가 자국의 생존과 안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국가들 간 기능이 차별화되지 않는다.
  • 권력 능력의 분포: 국가 간 권력의 차이가 국제체제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국제체제는 국가들 간의 힘의 분포에 따라 변화할 수 있으며, 권력의 균형은 국제정치의 안정과 불안정을 좌우한다.

4. 국제체제의 변화와 국가 행동

왈츠는 국제체제의 구조가 국가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았다. 국제체제의 구조적 변화는 국가들의 행동 방식을 변화시키며, 이는 국제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 국제체제의 변화: 국제체제의 구조는 조직원리나 권력의 분포가 변화할 때 달라진다. 예를 들어,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양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전환될 경우, 국제체제의 성격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국가들의 행동 방식도 변화한다.
  • 무정부 상태에서 위계적 체제로의 변화: 왈츠는 국제체제가 무정부 상태에서 위계적 체제로 바뀌는 것을 국제정치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로 보았다. 만약 한 국가가 국제체제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여 질서를 주도한다면, 이는 국제체제의 기본적 성격을 바꾸는 중요한 사건이다.

5. 신현실주의에 입각해서 21세기의 국제 정세를 이해해보기

1) 미·중 패권 경쟁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국제정치 현상 중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다. 신현실주의에 따르면, 강대국 간의 경쟁은 국제체제의 무정부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미국은 20세기 후반부터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자리잡았지만, 중국이 급격히 경제 성장과 군사력 증강을 이루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신현실주의는 권력의 분포가 국제체제의 핵심 요소라고 본다. 현재의 국제체제는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상황에 있으며, 이 과정에서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 경쟁한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분야에서 경쟁하며, 이는 무정부 상태에서 국가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힘을 키우고 상대국을 견제하려는 전형적인 신현실주의적 행태로 해석될 수 있다.

 

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도 신현실주의적 시각에서 설명할 수 있다. 신현실주의는 국가들이 무정부 상태에서 자신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러시아는 자국 주변의 안보 환경을 자국 생존에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며, NATO의 동진(東進)을 자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했다. 이를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러시아의 행위는 국제 규범을 위반한 것이지만, 신현실주의는 국제 규범보다는 국가 간 힘의 분포가 더 중요한 변수라고 본다. 즉, 러시아는 국제 규범보다는 자국의 안보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전형적인 현실주의적 국가 행동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행동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정부적 국제체제 속에서 러시아가 자국의 안보와 생존을 최우선시한 결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3) 군비 경쟁과 방위 산업

21세기 들어 다시 강화된 군비 경쟁도 신현실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첨단 군사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사이버전, 인공지능(AI) 기반의 무기 체계, 극초음속 미사일 등 신기술을 활용한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군비 경쟁은 국제체제에서 국가들이 자국의 생존과 안보를 위해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신현실주의적 접근과 일치한다.

특히, 신현실주의는 군사력이 국가 생존의 핵심이라고 보며, 무정부 상태에서 국가들은 서로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방위 능력을 계속해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21세기의 군비 경쟁은 국가 간 상호 불신과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설명될 수 있다.

 

4) 국제기구의 한계

국제연합(UN)과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이 제한적인 이유도 신현실주의적 시각에서 설명할 수 있다. 신현실주의는 국제체제가 무정부 상태이기 때문에 국제기구가 실질적으로 국가들의 자율적 행동을 규제하거나 통제하기 어렵다고 본다. 예를 들어, UN은 국제평화 유지를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이를 조정하거나 해결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한계는 특히 유엔 안보리에서 자주 목격된다.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UN의 역할이 제한되고 강대국들이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신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국제기구가 국가들의 힘을 제약할 수 없으며, 결국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6. 신현실주의에 대한 비판

신현실주의(Neorealism)는 국제체제를 중심으로 국가 간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지만, 여러 가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주요 비판들은 신현실주의가 지나치게 구조적 요인에만 초점을 맞추고, 국가 내부의 정치적, 사회적 요인이나 국제정치의 변화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제기된다. 아래는 신현실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들이다.

 

1) 국가 내부 요인을 무시

신현실주의는 국제체제의 무정부 상태와 구조적 특성에 집중하여 국가의 행동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국가 내부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예를 들어, 국가 내에서 지도자의 성향, 정치적 이데올로기, 국민 여론, 경제적 상황 등은 국가의 외교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신현실주의는 이러한 내부 요인들을 분석에서 배제하고, 국가 간 힘의 분포와 같은 구조적 요인만으로 모든 국가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러한 접근은 국가들이 각기 다른 정치 체제, 경제 구조, 문화적 배경을 가진다는 사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국가와 독재 국가가 같은 무정부적 국제체제 내에 있다고 해서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내부 정치적 고려에 의해 보다 제약된 외교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지만, 신현실주의는 이 차이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2) 변화에 대한 설명 부족

신현실주의는 국제체제의 구조적 안정성을 강조하지만, 국제정치의 변화와 발전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식은 국제정치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지만, 신현실주의는 이런 체제 변화의 원인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제체제의 구조가 무정부 상태로 지속된다면, 왜 어떤 특정 시점에 국제질서가 급격히 변화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국제협력의 증가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강해지는 현대의 글로벌화 현상을 신현실주의는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 현실에서는 국가들이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통해 안보 딜레마를 완화하고 협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현실주의는 국가들 간의 협력을 일시적이거나 허약한 것으로 보며, 협력의 구조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 취약하다.

 

3) 국제기구와 규범의 역할 간과

신현실주의는 국제체제가 무정부 상태라고 보고, 국제기구나 규범이 국가들의 행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본다. 하지만 현대 국제정치에서는 유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형사재판소(ICC) 같은 국제기구나 인권, 환경 보호와 같은 국제 규범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기구와 규범은 국가 간 협력을 촉진하고, 국가들이 자발적으로 규제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리버럴주의 이론은 국제기구와 규범이 국제질서 유지에 기여하며, 국가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이와 비교해 신현실주의는 국제기구의 역할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국제 규범이나 제도들이 국가 간의 협력을 증진하고 분쟁을 예방하는 실제 사례들이 있는데, 신현실주의는 이러한 측면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

 

4) 비국가 행위자에 대한 설명 부족

21세기 들어 비국가 행위자(terrorist groups, multinational corporations, NGOs)의 중요성이 증가했지만, 신현실주의는 여전히 국가 중심의 분석에 머무르고 있다. 현대 국제정치에서 테러 조직, 다국적 기업, 비정부기구(NGO) 등은 국가와 상호작용하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테러 조직들은 국경을 초월한 활동을 하며 국제 안보에 위협을 가하고 있고, 다국적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의 중요한 행위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신현실주의는 국제정치에서 국가가 가장 중요한 행위자라고 전제하기 때문에 비국가 행위자의 역할을 분석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비국가 행위자들이 국가의 주권이나 안보를 위협하거나, 국제 규범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5) 인간 안보와 복합적 위협의 무시

신현실주의는 국가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다루지만, 21세기 들어 기후 변화, 전염병, 사이버 위협과 같은 새로운 복합적 위협이 국제정치의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신현실주의는 전통적인 군사적 안보 위협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 변화로 인한 난민 문제나 팬데믹과 같은 비군사적 위협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대의 많은 국가들은 단순히 군사적 힘만으로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간 안보(human security)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개별 국가뿐만 아니라 지구 공동체 전체의 복지를 고려해야 하는 국제정치적 상황에서 신현실주의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