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도주의에 대해 글을 쓰려던게, 공부를 하다보니 역사적 제도주의(Historical Institutionalism),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Rational Choice Institutionalism), 사회적 제도주의(Sociological Institutionalism)에 대해 자주 접하게 되어 이 개념이 '신제도주의'에 해당하는 줄 알고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 역사적, 합리적선택, 사회적 제도주의는 국제정치이론이라기보다는, 정치학 전반, 특히 비교정치(comparative politics)나 공공정책, 조직이론 등에서 사용되는 사회과학 일반의 제도주의 접근 방식이라고 한다. 따라서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고전적 제도주의나 신제도주의(Neoliberal Institutionalism)와는 학문적 맥락이 다르다.
- 국제정치의 제도주의는 주로 국제협력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둔 외교안보/국제경제 이론이며,
- 사회과학의 세 가지 제도주의(역사적/합리적선택/사회적)는 국내정치와 정책 연구에서 정치 변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오늘은 이 세가지 제도주의에 대해 정리해 보려 한다.
1. 역사적 제도주의 (Historical Institutionalism, HI)
역사적 제도주의는 제도를 ‘시간 속에서 형성되고 고착화된 규칙의 체계’로 본다. 이들은 제도의 기원을 탐색하며, 초기 조건과 역사적 경로가 오늘날 정치적 선택에 어떤 제약을 주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 개념을 강조하며, 일단 특정 제도적 경로가 선택되면 이후의 변화는 점진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정책 변화는 일관된 연속선상에서 일어나며, ‘비용’, ‘관성’, ‘이해관계자’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 접근은 제도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강조한다.
대표 학자: 시다 스코치폴 (Theda Skocpol), 폴 피어슨 (Paul Pierson)
핵심 개념
- 제도는 정치 및 사회의 공식적/비공식적 규칙, 절차, 규범을 의미하며, 이들이 권력관계와 정책결과를 구조화한다고 본다.
- 제도는 시간에 따라 누적되고, 특정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만들어냄.
인간 행위에 대한 관점
- 인간은 전략적 행위자(calculating actor)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도적으로 내면화된 인식과 가치(culturally embedded)에 기반하여 행동함.
- 따라서 계산적 접근(calculus approach)과 문화적 접근(cultural approach)을 함께 활용하는 경향이 있음.
제도 형성과 변화
- 제도는 과거의 선택들이 현재의 선택을 제약하면서 점진적으로 형성됨.
- 변화는 보통 점진적 변화나 비정기적 전환(critical juncture)에 의해 발생하며, 사회경제적 충격이나 전쟁 등이 계기가 됨.
- 제도 변화에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와 비효율성이 빈번함.
특징 요약
- 제도는 권력의 불균형(asymmetry of power)을 형성하고, 어떤 집단에게 유리하게 작동.
- 다양한 요인(제도, 아이디어, 사회경제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
사례: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CAP)
유럽연합의 공동농업정책은 1960년대 초기에 도입된 이후 수차례 개혁을 겪었지만, 여전히 초기 설계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강하게 보여준다. 초기 설계 당시 농업 보조금과 가격 지지제도가 강하게 자리 잡으며 특정 국가(예: 프랑스)의 농민 집단에게 유리한 구조가 형성되었고, 이후 다른 정책 대안들이 배제되거나 개혁이 제한되었다.
이론 반영 포인트:
- 과거 제도 설계가 현재의 선택을 제약함
- 정치적 이해관계의 구조화
- 점진적이지만 뿌리 깊은 제도 변화
2.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Rational Choice Institutionalism, RCI)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는 정치 행위자들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개인’으로 본다. 이들에게 제도는 전략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게임의 규칙’이다. 제도는 행위자 간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협력을 유도하며, 행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다. 이 접근은 수학적 모델링과 게임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정책 선택의 논리를 ‘비용-편익 계산’과 전략적 균형으로 설명하려 한다. 즉, 제도는 행위자들 간의 전략적 선택의 산물이다.
대표 학자: 케네스 셉슬 (Kenneth Shepsle), 엘리노어 오스트롬(Elinor Ostrom)
핵심 개념
- 제도는 전략적 행위를 위한 규칙의 집합, 즉 거래 비용을 줄이고 불확실성을 낮추는 구조로 이해됨.
- 주로 게임이론, 대리인 이론, 거래비용 이론 등에 기반.
인간 행위에 대한 관점
- 인간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행위자(rational actor)로 간주.
- 선호는 주어진 것이며(exogenous), 전략적으로 행동함.
제도 형성과 변화
- 제도는 집합행동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창출됨.
- 제도 변화는 주로 합리적 합의나 선택된 효율성(selection efficiency)에 따라 이루어짐.
- 비판적으로 보면 변화 메커니즘이 기능주의적이고 의도주의적(intentionalist)이며, 권력 비대칭을 간과할 수 있음.
특징 요약
- 제도는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을 통해 안정성을 유지.
- 전략적 상호작용(strategic interaction)을 강조하며, 예측 가능한 분석틀을 제공하지만 인간 행위를 협소하게 해석하는 한계가 있음.
사례: 미국 상원의 필리버스터 규칙 유지
미국 상원은 소수파 의원이 발언을 길게 하여 입법을 지연시킬 수 있는 필리버스터(filibuster) 규칙을 유지해 왔다. 이 제도는 모든 의원들이 장기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제도적 균형으로 이해된다. 현재 다수당이더라도 미래에 소수당이 될 가능성을 고려해, 제도적 구속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작용한다.
이론 반영 포인트:
- 국가(혹은 의원)는 합리적, 전략적 행위자
- 제도는 거래비용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
- 현재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미래 이익을 고려한 전략
3. 사회적 제도주의 (Sociological Institutionalism, SI)
사회적 제도주의는 제도를 단순한 규칙이나 계산의 도구가 아니라, 행위자들의 정체성과 인식을 형성하는 ‘의미의 틀’로 본다. 개인이나 조직은 주변 사회로부터 ‘무엇이 적절한 행동인가’를 배운다. 따라서 제도는 단지 이익을 조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적절성의 논리(logic of appropriateness)’에 따라 행동을 구조화하는 문화적 기반이다.
국가나 조직은 사회적으로 정당화된 제도나 관행을 모방하고 따르려 하며, 이는 제도적 동형화(isomorphism) 현상을 낳는다. 이 접근은 특히 문화, 상징, 정체성, 규범의 힘을 강조한다.
대표 학자: 제임스 마치 (James G. March), 요한 올센 (Johan P. Olsen)
핵심 개념
- 제도는 규범, 상징, 정체성, 인지 스크립트 등을 포함하는 문화적 구조물.
- 제도의 존재는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정당성(social legitimacy)*에 의해 설명됨.
인간 행위에 대한 관점
- 인간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정체성과 세계관에 따라 행동.
- 합리성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 즉, "무엇이 적절한가(logic of appropriateness)"가 행동을 결정함.
제도 형성과 변화
- 제도는 기존의 문화적 규범과 상징체계에서 ‘차용(borrowing)’되어 확산됨.
- 제도 변화는 문화적 권위, 정당성의 변화, 국제적 규범의 확산 등을 통해 발생.
- 변화는 의도된 전략적 선택보다는 문화적 내면화와 제도 간 확산(diffusion) 과정에 가까움.
특징 요약
- 개인은 제도를 따름으로써 사회적 행위자로 정체화되고, 동시에 제도를 재생산함.
- 행동은 ‘전략’이 아니라 ‘해석’을 통한 구성적(constructional) 결과임.
사례: 국제기구에서의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제도 채택
많은 국제기구(UN, EU 등)는 1990년대 이후 성 평등을 위한 ‘성 주류화’ 정책을 제도화했다. 이는 반드시 실용적 효과나 전략적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성 평등은 바람직하다’는 정당성과 적절성의 규범적 가치에 기반한다. 많은 개발도상국도 이런 제도를 도입했는데, 실제 정책 효과보다는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정당성 확보’가 주요 동기였던 경우가 많다.
이론 반영 포인트:
- 행위자는 ‘적절함의 논리(logic of appropriateness)’에 따라 행동
- 제도는 정체성 구성과 정당성 확보의 수단
- 제도 변화는 문화적 확산과 모방(diffusion)에 의해 발생
세 제도주의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 역사적 제도주의(HI) |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RCI) | 사회적 제도주의(SI) |
제도 정의 | 정치·경제 조직 구조 내 절차, 규범 | 집합행동 문제 해결 위한 규칙 | 상징, 스크립트, 인지 틀 포함한 문화 |
인간관 | 전략+문화적 내면화 | 전략적 행위자 | 사회적 정체성 기반 |
제도 영향 | 구조화, 경로의존성 | 정보 제공, 불확실성 제거 | 의미 구성, 정체성 형성 |
변화 방식 | 점진적 경로의존+비정기적 전환 | 효율성 기반의 계약·선택 | 정당성, 적절성 변화와 확산 |
강조 요소 | 권력, 아이디어, 역사 | 이익, 전략, 게임이론 | 문화, 상징, 사회적 의미 |

본 포스팅은 아래 논문을 참고하였습니다.
Hall, P. A., & Taylor, R. C. R. (1996). Political Science and the Three New Institutionalisms. Political Studies, 44(5), 936-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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